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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금파 극작가, 영화감독 |
수족관에서 관중들에게 여러가지 고난도 동작을 표연하기까지 돌고래를 연습시키는데 너무 빡세게 시키면 스트레스를 받아 우울증에 걸리며 심하면 죽기까지 한단다.
바다에서 수난자가 돌고래의 도움으로 살아난 사례 아주 많다. 무리져 사는 돌고래는 선박이 옆으로 지나가면 마치 환영퍼포먼스를 하듯이 겨끔내기로 물우로 솟구치며 춤추기도 한다.
2022년 2월24일에 발발한 러시아 우크라이나전쟁은 3년째를 지속되면서 종전기미는 전혀 보이지않고 지구전으로 갈 상황을 보이고 있다.
소모전에 지친 러시아의 푸틴은 우크라이나 동부 돈바스 등 네개 지역을 넘겨주고 나토에 영원히 가입하지않겠다는 맹세를 하면 담판을 하겠다고는 종전의사를 밝혔다. 그러나 우크라이나는 국토를 떼주는 대가로 종전은 여전히 불가다하는 태도이다.
30여년전의 일이다. 목단강시 누나네가 살고 있던 세집 주인네와 옆집에서 다툼이 시작되였는데 옆집에서 새로 확건하는 집의 추녀가 누나네가 세를 들어사는 집의 추녀를 눌러놓게 5센치정도 올라갔던것이다. 옆에 집 지붕이 주인집 지붕을 누르는 형국이 돼버리니 주인집에서 자기집 기를 눌러놓는다고 새로 올린 지붕을 뜯고 자기네 집지붕과 가쯘하게 하라는 것이였다.
옆집에서는 그렇게 하면 인건비가 또 새로 투입되니 그 손해를 누가 부담하겠는가며 보수공사를 거절했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자기네 지붕이 우에서 누르는것이 기분나쁘면 너네 집지붕을 뜯어서 자기네 지붕우로 다시 올리라고 했다. 생억지였다. 나는 두집의 다툼이 리해가 되지않았다. 별로 큰일도 아닌데 이웃끼리 다투다니?
그런데 서로 자존심싸움으로 점점 커진 분쟁은 드디여 쟁기를 들고 치고 박는 격투로 승화되였다. 결국 파출소에서 나서서 두집의 주동자들을 잡아가고 머리터지고 다리가 부러진 부상자들은 병원으로 실려갔다.
결과적으로 옆집에서 다시 지붕을 뜯고서 주인집과 같은 높이로 보수공사를 하는것으로 일단락을 맺었다.
마을에서는 호도거리를 시작하면 집집이 인구에 따라서 토지를 분배했는데 해마다 집집의 토지경계선 팻말의 기준에서 밭이랑이 삐뚤었다는 둥, 반고랑을 옆집에서 파갔다는 둥 싸움이 벌어졌다.
러시아는 중국청나라와 불평등조약으로 무려 300만평방키로의 령토를 빼앗아갔다. 쏘련해체후 일부의 령토를 반환했다지만 그것은 근근히 10만평방키로도 안되는 자투리 땅이였다.
작년 10월에 가자지구의 하마스가 늦닺없이 이스라엘을 기습공격하면서 수백명의 이스라엘 군민이 사망하고 수백명의 인질이 잡혀간다. 이스라엘 총리 네타네후는 즉각 보복반격을 가했다. 현재까지 가자지구 아랍인들은 2만여명의 사상자가 나왔고 수백만명이 피난길에 올랐다.
2천년동안 세계각지에 흩어져 떠돌이생활을 하던 유태인들은 2차대전 때 독일의 히틀러에게 600만명이나 살해당하는 민족의 비극을 맞이하게 된다. 2차대전이 끝나고 유태인들의 요구에 따라 2년전 유태인 조상들이 살았던 땅 가자지구에 이스라엘나라를 세우게 해달라고 유엔에 제출한다. 그런데 유태인들이 떠났던 가자지구에는 이미 2천년동안 아랍인들이 살고있었다. 서로 내고향땅이라고 싸우는 전쟁은 지금까지 79년간 끊이질않고 이어져왔다.
중국960만평방키로의 령토중 동북삼성 면적은 78만평방키로이다. 동북삼성은 예로부터 곡창이고 목재, 석탄, 철강, 석유 등등 자원이 엄청 풍부하다. 1931년 일본제국주의는 동북상성에 침략해들어와서 말대황제 부의를 내세워 만주국을 만든다. 방대한 중국국토에서 제일 노란자위인 동북삼성을 집어삼키는 작전이였다.
2차대전이 끝나갈 무렵 히틀러의 총칼을 피해 중국상해에도 대략 5만명의 유태인들이 피난와서 있었다. 중국국민들이 십시일반으로 도움의 손길을 보낸 덕분에 그들은 생명을 보존하고 새로 세워진 자기들의 나라 이스라엘에로 돌아갈수있었다.
그런데 그당시 이스라엘 건국의 첫 유력후보지는 지금의 가자지구가 아니였다. 농사도 지을수없고 지하자원도 없는 가자지구는 인간이 살기에 적합한 곳은 아니였던것이다.
1934년 일본은 조선을 통하여 중국동북까지 침략해들어왔는데 전쟁자금으로 어마어마한 돈이 들어갔다. 그들은 수중에 많은 금은보화를 소유하고 있는 유태인들을 중국동북에 끌어들여 보호구역을 만들어준다는 미명하에 금전확보를 꾀했다. 유태인들께도 솔깃한 제안이여서 찬성이였다. 드디어 1938년 일본내각에서 이 제안이 통과되여 본격적으로 추진하기로 확정되였다. 일본은 일단 15만~20만명의 유태인들을 동북에 끌어들여 어느 한 지역을 할애하여 유태인 나라를 세우게 해준다는 보증까지 서줬다.
그런데 1941년 독일, 일본, 이탈리아 3개나라가 나치동맹국(三个轴心国)으로 결성되면서 결국 일본과 유태인들의 허황된 꿈은 수포로 돌아갔다. 천만다행이다.
그당시 일본과 유태인들이 이 프로제트에 붙인 작전명이 바로 "돌고래계획(海豚计划)" 이였다.
그런데 1941년 독일, 일본, 이탈리아 3개나라가 나치동맹국(三个轴心国)으로 결성되면서 결국 일본과 유태인들의 허황된 꿈은 수포로 돌아갔다. 천만다행이다.
그당시 일본과 유태인들이 이 프로제트에 붙인 작전명이 바로 "돌고래계획(海豚计划)" 이였다.
주금파
극작가, 영화감독
중국 연변영화드라마예술가협회 회장
연변희성영화드라마제작회사 법인대표
원 연변TV방송국드라마 PD
주요작품:
영화(부모) (아리디연가) (경찰관의 이야기) 드라마(자전거) 등 다수
제22회서울프라이즈TV부문 대상, 중국소수민족제5회"금붕상"대상, 연변진달래문예상 창작상 등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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