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신애 클래식 음악작가 :
요즘 불어오는 따뜻한 바람은 ‘이제 봄이야!’라는 숨결로 살랑이는 듯합니다. 온기가 느껴지는 바람 따라 예쁜 꽃들이 찾아올 생각을 하면 벌써 가슴이 설레기도 하지요. 눈부신 날씨에 내 마음에도 꽃을 피워줄 누군가가 있다면! 삶의 에너지가 얼마나 벅차오를까요. 이미 좋은 상대를 만난 분에게도, 이제 곧 만날 분에게도 사랑에 대한 기대가 가득한 계절입니다.
저는 인생의 봄에 어울리는 클래식 음악을 소개해 드리려 합니다. 바로 구스타프 말러의 <교향곡 5번>과 에드워드 엘가의 <사랑의 인사>입니다.
▲ 말러 <교향곡 5번>, 4악장 |
‘사랑은 말로 표현해야 안다.’라는 말을 들어보셨을까요? 말러는 이 말이 틀렸다는 것을 증명합니다. 언어가 아닌 음악으로 전하는 방법이 존재한 거예요. 때는 1902년. 그의 하나뿐인 사랑, 알마 쉰들러를 지인이 주선한 모임에서 운명처럼 만나 결혼식에 골인해요.
동시에 <교향곡 5번>도 탄생합니다. 작곡가 말러에게는 뜻깊은 해였죠. 심각한 장출혈로 삶의 고비를 겨우 넘긴 직후였거든요. 자연 속에 별장까지 마련하며 긴 회복 기간을 거쳐야 할 정도로 증세는 심각했어요. 다행히도 요양이 힘을 발휘했는지 건강을 되찾았죠. 죽음과 사랑, 두 가지 경험을 겪은 말러의 음악은 특히 4악장에서 빛을 발합니다.
사랑을 담은 노래이지만 죽음과 어울리는 묘한 이 음악은 박찬욱 감독의 영화<헤어질 결심>에서도 사랑과 죽음의 경계에서 적절히 사용됩니다. 생을 오가던 사람에게 사랑이 마냥 천진하게 느껴지지는 않았던 것 같아요. 동시에 ‘살다 보면 좋은 날이 온다’는 말이 정확히 적용되는 사례가 아닌가 싶어요.
▲ 엘가 <사랑의 인사, Op.12> |
인생의 봄은 엘가의 <사랑의 인사>에도 묻어나 있어요. 역시 사랑과 함께 찾아오죠. 피아노 선생님이던 엘가는 캐롤라인 앨리스 로버츠라는 여인을 제자로 만나 사랑에 빠집니다. <사랑의 인사>는 1888년 약혼자에게 바치는 선물로 지어진 곡이에요. 따뜻하고 포근한 선율이 매력적인 곡이죠. 선율의 느낌 외에도 그의 달콤한 사랑은 곳곳에 묻어나요.
악보에 사랑하는 그녀의 이름을 약자로 담고, 제목은 독일어 공부를 좋아하는 그녀를 위해 독일어로 짓죠. 다만 판매량을 늘리려는 출판사의 설득으로 프랑스어로 바뀌는 에피소드가 있긴 합니다. 어쨌든 캐롤라인은 엘가가 작업할 때 악보에 선 긋는 일을 돕거나, 출판사에 악보를 전하는 일을 대신하며 늘 뮤즈가 되어줬어요. 그녀의 내조로 처음엔 무명이던 엘가도 마침내 크게 성공합니다. <사랑의 인사>도 사랑의 봄이 곧 인생의 봄으로 이어진 이야기가 숨어있는 작품이에요.
참고로 말러의 이야기는 제 책 <로맨스 인 클래식>에서, 엘가의 이야기는 <베토벤 빼고 클래식>에서 자세히 확인할 수 있어요. 그들의 사랑은 어떤 결말을 맺는지, 이들은 어떤 상황에서 어떤 에너지로 영감을 받아 다른 작품들을 탄생시켰을지 궁금하시다면 좋겠습니다.
여러분에게도 인생의 봄이 되어주는 사랑이 있나요? 어느새 성큼 다가온 봄을 함께 맞이할 사람은 있으신가요? 없어도 좋아요. 다만 올해 봄도 따뜻한 설렘과 기대로 가득하길 바라며 글을 마무리해 봅니다.
유신애 클래식 음악작가 프로필
단행본 <로맨스 인 클래식>, <베토벤 빼고 클래식>을 쓴 클래식 음악 작가.
대학에서 피아노를 전공한 후, 클래식 음악 전문 월간지 <피아노 음악>, <스트링앤보우>에서 클래식 전문 기자로 근무하였으며, KBS 클래식 음악 방송 <더 콘서트>, 클래식 음악과 강연이 더해진 KBS 연말특집생방송 <오늘과 내일> 등에서 구성작가 겸 음악코디네이터로 활동하였다.
현재는 강연, 북토크 등 다양한 채널로 독자들을 만나고 있다.
[저작권자ⓒ 파이낸셜경제신문 | 파이낸셜경제TV.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