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에서 찾는 즐거움... 남재희 작가의 '내가 뭣을 안다고'

안동수 칼럼니스트 / 기사승인 : 2024-01-11 00:4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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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수, 경영학 박사
전)KBS부사장
wwbw@kakao.com

 

사람들의 생각은 천차만별인데 이 생각은 세상의 정보와 지식을 접하는 정도에 따라 시대와 사회에 따라 개인차가 생기게 마련이다. 이러한 생각체계에 영향을 주는 정보와 지식의 생산과 전달 주최는 언론을 다루는 기자들이다. 그것도 영상으로 메시지를 전하는 방송보다는 신문 쪽의 스팩트럼이 당연히 우성이다.

문명이 에너지를 사용하는 정도에 따라 그 문명의 수준을 가늠하는 데 ‘카르다쇼프 척도’라는 것이 있다고 한다. 문명은 발전할수록 많은 에너지를 사용하는 것이 기준이다. 이런 원리를 원용해 우리 생각을 무한한 우주라고 본다면 그 속으로 생각여행을 갈 때 이러한 기자들의 결과물을 에너지로 쓰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파리가 말 궁둥이에 붙어 긴 여행을 갈 수 있는 방법과 같이. . .


필자가 최근에 만난 좋은 작품으로 최근 신간으로 남재희 작가의 <내가 뭣을 안다고>를 소개한다. 저자는 서울법대를 졸업한 후 조선일보와 서울신문 등에서 여러 해 동안 기자 생활을 하다가 서울 강서구에서 네 번 국회의원에 당선되었고, 김영삼 정부에서 노동부 장관을 지냈던 우리나라의 엘리트 언론인 중에 한사람이다. 필자가 이 책에서 인상 깊게 느낀 내용 몇 가지를 소개하고자 한다. 한국 근대사를 모르는 요즘의 젊은이들에게 변화의 노도를 몸으로 살아온 선배 세대의 강인한 삶을 들여다 볼 수 있는 기록이라고 생각되어 권하고 싶다.


논리의 문제제기와 균형논리의 함정


● 서울대의 임종철 경제학 교수가 박정희 정권의 여러 가지 경제 실책을 열거하며 비판하자 청와대 정치자문위원인 장위돈 박사가 “잘한 것도 있는데 그것은 말하지 않고 잘못한 것만 그렇게 열거하느냐”고 반박했다. 그러자 임교수는 “가령 폐암 환자가 병원에 가면 의사가 당신은 눈도 좋고, 위도 좋고, 간도 좋고, 운운하며 열거하고 그런데 당신은 폐암이요! 라고 말하는가”하고 반박했다.

● 주간잡지 기자가 노동부 장관이 된 기분을 묻길래 “삼복더위 에 돼지고기 먹는 심정이랄까”라고 말했다. 노·사간의 대결이 있는 데다 노·노 간의 대립마저 있어 골치가 아프기 때문이다. 주간잡지는 그 표현을 머리띠 같은 제목으로 뽑았다. 그 후 40대 이하인 직원들에게 “삼복더위에 돼지고기 먹는 것이 뭐냐”는 질문을 몇 번 받았다. 처음에는 농으로 그렇게 묻는줄 알았다. 그런데 정말로 묻는게 아닌가. “아차, 냉장고 세대니까 그 뜻을 모르는 것이 당연하지 않겠는가.” 곧 깨달을 수 있었다. 그러면서 이것도 세대 차구나 하고 세대 차 문제를 곰곰이 되씹고 있는 것이다.

● 우리는 일상생활에서나, 사업에서나, 정치에서나 너무 악착같이 이기려고만 한다. 이기기 위해서는 반칙도 밥 먹듯이 한다. 반칙만 하는 것이 아니라 흉측한 음모를 꾸미고 끔찍한 잔학행위도 서슴지 않는다. 사회가 건전해지고 성숙해지려면 구성원들이 패배의 미학을 체득할 필요가 있겠다. 져도 우아하게 진다. 아니 졌다고 해서 결코 실망하지 않고 다시 일어서기 때문에 우아하다. 패배(敗北)의 미학이라고 이름 지어보았다. 지는 데에도 아름다움이 있다. 그것이 스포츠의 정신이기도 하다. 페어플레이가 아니겠는가.


초점을 찾아야 할 정치


“여야를 막론하고 중산층을 끌어안는다는 전술도 마찬가지다. 중산 층이 두껍게 형성되었으면 나라가 그만큼 발전한 것임에는 틀림없으나 두텁지도 않을뿐더러 그것은 불안한 중간지대에 지나지 않는다. 여론 조사에 나타난 허위의 ‘중산층 의식’을 기초로 하여 정책 대안을 제시한다면 그것은 곧 모래 위에 성을 쌓는 격이다. 동서고금을 통해 주민을 바보로 만들면서 민주주의가 정착한 적은 없다.” 그러나 아직은 서민의 복지를 말할 때라고 본다.


해방 이후의 정치판도


해방 후 이승만 박사의 준 독재체제가 강화되면서 이탈세력이 생겼다. 그 가운데 보수적인 맥은 한민당→민국당→민주당으로 이어졌고, 비 이승만·비 한민당세력들이 처음에는 막연하게 혁신계 운운으로 불리다가 점점 혁신계로 이름이 굳어지게 되었다. 이름이 굳어졌다는 것이지 주의 주장이나 정치노선 측면이 굳어졌다는 것은 아니다. 막연한 혁신계에는 여운형 씨의 건준(建準)→근민당파(勤民黨派), 김구 씨의 한독당계(韓獨黨系), 김규식 씨의 민자련계(송남헌 선생), 조봉암 씨의 진보당계(윤길중 씨), 이범석 장군의 족청계(族靑系) 등등이 참으로 잡다하리 만큼의 가닥가닥으로 얽혀있는 것이다.


소설가 나림(那林) 이병주의 공산주의 비판 이론


“적을 타도하기 위한 조직으로선 공산당이 일등의 조직일는지 모르지만 백성을 잘 다스리기 위한 조직으로선 위험하기 짝이 없는 조직이라고 단정할 수가 있어.”


자기의 지조대로 살아간 표본 우인 송지영(雨人 宋志英)


독립운동, 형무소살이, 신문사 편집국장, 정치 활동(해방 후 철기 이범석 장군의 연설문을 써 주었다), 형무소살이 또 신문사 간부, 형무소살이…. 그런 인생이기에 그는 도가 통해 있다. 아등바등하지 않고, 마치 박목월 시에 나오는 것처럼 구름에 달 가듯이 살아간다. 말년에는 국회의원, 문예진흥원장, KBS 이사장 등 관복도 있었는데 그런 것이 우인에게는 무어 대단했으랴. 술집 스탠드에서 조용히 담소하며 마시는 양주 칵테일에서 오히려 인생의 진미를 느꼈던 게 아닌가 싶다.


해방 후의 논리들


사상의 스펙트럼에 따라 나누어 보면, 조정래의 『태백산맥』은 진보파, 이병주의 『지리산』은 리버럴 좌파, 선우휘의 『불꽃』, 『깃발 없는 기수』는 리버럴 우파, 이문열의 『영웅시대』는 보수파 등. 이병주의 리버럴 좌파는 헤밍웨이의 『누구를 위하여 종을 울리나』와 같이 스페인 내전 당시의 공화파를 동정하던 그런 맥락이었다. 나중에는 변했다. 선우 선생과 엄청 술을 마시고 재담을 하였는데 그것도 끝나게 되었다. 그가 중앙일보에 「물결은 메콩강까지」라는 월남파병을 예찬하는 소설을 쓰게 되었기 때문이다. 경제적 실리는 취할지 모르겠으나 도덕적 명분은 없는 파병으로, 오늘날에 와서는 우리가 그 일을 사과하고 있지 않는가.


주선(酒仙) 석천(昔泉) 오종식 선생의 주모와 주도


석천의 주도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술집 주모를 어떻게 대하느냐 하는 것이다. 주모를 깍듯이 대하면 그대로 되돌아와 그 분위기는 예의 바르고 정중한 것이 된다. 주모를 함부로 대하면 반대로 거칠고 상스러운 분위기가 된다. 요즘 사람들에게 특히 이야기하고 싶은 항목이다.


시퍼런 권력 앞에 바른 소리


● 노(태우) 대표가 오기 전인데 곽정출 부산지부장이 무언가 볼멘소리를 늘어놓는다. 무얼 투덜대나 하고 귀를 기울이니 “왜 군인끼리 대통령을 해 먹느냐 말이야. 설혹 그렇다 할 때도 왜 동기끼리냔 말이야.”라고 대담한 불만을 말하는 게 아닌가. 참 용기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되었다.

● 네 번째인가, 아무튼 후반이 되었다. 박 대통령이 나를(남재희) 바라본다. “각하께서 솔직히 말해보라고 하셔서 말씀드리겠습니다만, 지금 국회에 각하의 집안이 다섯 명이나 있습니다. 지금 다양화된 사회에서 여러 분야가 있는데도 불구하고 왜 몽땅 국회에만 진출시킵니까. 김일성 체제가 근친 등용을 많이 하는데 이래 가지고는 우리가 어떻게 그들을 비난할 수 있습니까. 분산시키시기 바랍니다.” 그때 국회의원으로 박 대통령의 집안은 조카사위인 김종필, 그의 친형인 김종익, 박 대통령 처남인 육인수, 처조카사위인 장덕진, 대외적으로는 일체 밝히고 있지 않았지만 박 대통령과 본부인 사이의 딸의 남편인 한병기 의원 등 다섯 명이 있었다. “내 사위를 말하는 것이지.” 박 대통령의 언성이 약간 높아졌다. 민감한 곳을 건드린 것 같다. 육 여사만 공식으로 내세울 뿐 전부인 이야기는 쉬쉬하던 때다. 그러니 멀뚱멀뚱 살아있는 딸이나 그 사위에게 얼마나 미안한 생각을 갖고 있었겠는가. “속초에서 그 애 아니면 마땅한 사람이 없다고 하던데…” “대통령 사위니까 그런 것이지요. 사위가 아니면 다를 것입니다.” 아마 나의 얼마간 급한 성격을 아는 사람들은 이렇게 되받았을 것으로 짐작을 할 것이다. 사실 그 말이 목구멍까지 나오고 있었으나 꾹 참았다. 예의를 생각해서다. 술자리는 그렁저렁 끝났다. 그런데 박 대통령은 대단한 분이다. 그 자리에서는 그렇게 언성을 높였지만 그 말을 기억하고 단계적으로 시정해 나갔다.


일본과의 관계 설정


독일과 비교하여 보면 일본의 지난날의 죄악에 대한 반성은 턱없이 모자란다. 그러나 세상은 유럽연합(EU)에서 보는 바와 같이 공동체를 형성해가는 방향으로 나가고 있다. 우리도 내키지는 않는 일이지만 일본을 포함하는 동북아공동체라는 목표를 먼 앞날에 설정하고 일본을 보다 더 알고, 보다 더 이해하기 위해 노력을 해야 하리라고 본다. 물론 한반도 분단 극복이라는 장애를 넘어서…. 오랫 동안의 생각치고는 평범한 이야기로 결론이 되었다. 세상사란 본래 그렇게 상식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게 아닌가.


함량 미달의 서태후 정치 결과


청일전쟁은 다 알다시피 우리나라의 동학혁명에 청·일이 출병하고 충돌하여 생긴 전쟁이다. 지상 전투도 중요했지만 해전이 승패를 갈랐다. 그때 양국의 해군력은, 사후의 검토를 통해 보면, 청나라의 북양해군보다 일본 연합함대가 약간 우세했다. 특히 속력에 있어서 일본이 앞섰다. 그러함에도 청나라가 졌다. 왜 졌을까? 간단히 말해보면, 첫째로, 전함 수는 거의 비슷한데 마지막에 포탄이 부족하여 더 싸울 수가 없었다는 것이다. 왜 포탄이 부족했을까? 해군에 예산을 적게 배정해서다. 많은 사람이 북경의 이화원에 가보아서 들었을 것이다. 서태후가 해군 예산을 왕창 빼돌려 환갑기념으로 그 엄청난 별궁 이화원을 건조한 것이다. 그래서 10년 동안 외국에 군함을 발주하지도 못하였다. 일부 항의가 있자 이화원의 호수에 작은 전함을 띄워놓고 그게 해군이라 했다니 기막힌 소극(笑劇)이다. 당시 가장 훌륭한 전함 두 척을 갖고도 포탄이 떨어져 패배하다니 어처구니 없는 이야기다.


외국인이 본 한국의 문제점과 대안


핸드슨의 책은, 현대한국에 관해 쓴 책으로 열 권을 추천하라면, 반드시 포함될만한 그런 역작이다. 참 재미있는 한국 근현대사의 정치, 사회학적 해석이다. 간단히 요약하면, 한국사회의 밑바탕은 모래알처럼 분산되어 결속력이 없으며 그 원자화된 개인들이 중앙의 권력 정상을 향하여 회오리바람을 일으키고 있다는 것이다. 전국의 모든 사람이 서울을 향한다. 서울에서도 권력의 중심인 왕이나 대통령을 향한다. 그리고 권력을 위해, 명예를 위해, 치부를 위해… 마치 회오리 바람처럼 무한운동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회오리를 잠재우고 안정된 사회를 이룩하려면, 그래서 민주화를 하려면, 중간매개집단(intermediary groups)을 가꾸어야만 한다는 처방이다. 우선 지방자치를 실시해야 한다.(그때는 1968년이니까 지방자치의 선거가 없었다.) 그리고 농민이면 농민, 상인이면 상인 등등 각종 동업조합 · 직능단체들이 충실하게 자리 잡아야 한다는 것이다.


숨어 있는 한국의 저력 여걸 파워


그녀는 시베리아 유끼꼬 별명의 전옥숙 씨로 재야, 언론계, 방송계를 휘어잡았다. 그의 주된 직업을 말한다면 영화사와 TV 프로그램 제작회사를 운영한 적이 있는데, 전 여사는 미모와 지성, 그리고 마당발 같은 지식인들 교류 범위를 갖고 있다. 그래서 주당인 나에게는 교류하기가 안성맞춤이다. 뭐랄까, 현대미라는 표현이 성립될지 모르겠다.


마무리


근대 40년대 이후 한국의 역사를 재 정리한 이 책을 읽으면서 사회 활동영역이 지나치게 남성 위주로 진행되어 왔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해 본다. 물론 그동안 우리나라를 둘러 싼 근대 환경이 그랬던 것을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제라도 이런 능력있는 여성들이 팔을 걷어 붙이고 당당하게 나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아울러 이런 역사 이야기를 통해 우리 젊은 세대들이 치열하게 살아온 백발의 선배들을 이해하는 소통의 장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남재희 작가가 뛰어난 필체로 기록을 남긴 이 책이 대양미디어에서 2024년 1월 초에 출판되었는데, 고급스런 디자인과 책 구성이 내용을 돋보이게 만들어 눈맛과 손맛이 좋다. 감사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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