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국립대학교 이상열 교수팀, 《몰레큘러 플랜트》에 논문 발표

김영란 기자 / 기사승인 : 2026-06-05 14: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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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 스트레스가 촉발하는 분자 스위치: 단백질 분해효소가 단백질 보호인자로 변신
▲ 열 스트레스에 의한 EMR의 이중 기능 전환 모델: 정상 조건에서 소포체의 단백질 분해효소로 기능하던 EMR이 열 스트레스 시 아연 이온(Zn²⁺)을 방출하며 분자 샤페론으로 전환되어 세포질에서 단백질을 보호한다(《몰레큘러 플랜트(Molecular Plant)》 발표).

[파이낸셜경제=김영란 기자] ◐ 하나의 단백질, 두 개의 얼굴—열이 작동시키는 식물의 정교한 생존 전략

뜨거운 여름, 작물이 고온 스트레스에 쓰러지지 않고 살아남을 수 있는 비밀이 단 하나의 단백질 안에 숨어 있었다.

경상국립대학교 이상열 석좌교수 연구팀이 식물 세포 내 ‘EMR(이엠알)’이라는 단백질이 열 스트레스 신호에 반응하여 단백질 분해효소에서 단백질 보호인자로 기능을 전환하는 정교한 분자 메커니즘을 세계 최초로 규명했다. 이 연구결과는 식물 과학 분야 세계 최고 권위지인 《몰레큘러 플랜트(Molecular Plant)》(IF: 24.1, 식물 과학 분야 2위, 상위 0.5%)에 6월 3일자(한국시각) 온라인판에 게재됐다.

◐ “분해하던 단백질이 보호자로—아연 이온 하나가 운명을 바꾼다”

연구의 주인공은 ‘EMR’이라는 단백질이다. 평상시 EMR은 식물 세포 내 소포체에 자리를 잡고, 손상되거나 불필요한 단백질에 꼬리표(유비퀴틴)를 달아 분해시키는 E3 유비퀴틴 리가아제로 묵묵히 세포 청소부 역할을 한다.

그런데 열 스트레스가 가해지는 순간, EMR은 놀라운 변신을 시작한다.

단백질 내부에 붙잡혀 있던 아연 이온(Zn²⁺)이 방출되면서 EMR의 구조가 통째로 바뀐다. 혼자 떠돌던 단량체에서 여러 개가 뭉친 올리고머 형태로 재조립되고, 소포체를 떠나 세포질로 이동하여 열에 의해 엉키기 시작하는 주변 단백질들을 붙잡아 보호하는 분자 샤페론으로 탈바꿈한다. 손상 단백질을 제거하던 분해자가 다른 단백질을 지켜주는 보호자로 돌변하는 순간이다.

더욱 놀라운 점은, 이 모든 전환이 새로운 단백질을 만들거나 유전자를 새로 켜는 복잡한 과정 없이, 아연 이온 하나의 방출로 촉발된 구조 변화만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에너지와 시간을 최소화하면서 위기에 즉각 대응하는, 수억 년 진화가 만들어낸 정교한 리독스(Redox) 분자 스위치인 셈이다.

◐ “열 스트레스 리독스 분자 스위치의 작동 원리, 다각도 실험으로 밝히다”

연구팀은 이 메커니즘을 단계별로 직접 규명했다. 아연 이온을 인위적으로 제거하면 열 스트레스 없이도 EMR이 올리고머로 변하고 샤페론 기능을 갖는 반면, 반대로 아연 이온을 보충하면 올리고머가 다시 단량체로 돌아오고 E3 리가아제 기능이 회복된다. 열이 아닌 아연 이온의 유무가 EMR의 운명을 결정짓는 진짜 열쇠라는 직접적 증거다.

나아가 연구팀은 공초점 현미경을 통해 EMR이 열 스트레스 시 소포체에서 세포질로 이동하는 것을 시각적으로도 확인했으며, 식물 세포 내에서 실제로 아연 이온이 방출된다는 것을 생체 내(in vivo) 실험으로도 직접 입증했다. 또한 E3 리가아제 기능을 없애고 샤페론 기능만 남긴 돌연변이 식물이 정상 EMR 과발현 식물과 동등한 열 내성을 보인다는 유전학적 증거까지 확보하여, 식물 열 내성에서 EMR의 샤페론 기능이 핵심 역할을 한다는 것을 다각도로 입증했다. 비교 단백질체 분석을 통해서는 EMR이 단백질 합성에 관여하는 리보솜 단백질들을 열로부터 보호한다는 사실도 확인했다.

◐ “기후변화 시대, 내열성 작물 개발의 새 길 열다”

이번 연구는 단순한 기초과학의 성과를 넘어 실질적인 농업 응용 가능성을 제시한다는 점에서도 주목받고 있다. 기후변화로 이상 고온 현상이 빈번해지면서 고온에 취약한 작물의 피해가 전 세계적으로 증가하고 있는 상황에서, EMR과 같이 열 내성을 높이는 핵심 단백질의 발견과 그 메커니즘의 규명은 내열성 작물 개발의 직접적인 원천기술이 될 수 있다.

이상열 교수는 “이 연구는 식물이 열 스트레스라는 극한 상황에서 단백질의 구조와 기능을 역동적으로 전환시키는 정교한 리독스 분자 스위치 메커니즘을 최초로 규명한 것”이라며 “하나의 단백질이 환경 신호에 따라 즉각적으로 완전히 다른 두 가지 기능을 수행한다는 발견은 식물 생명과학 분야에서 매우 혁신적인 성과이다.”라고 강조했다. 연구팀은 “고온 스트레스에 저항하는 핵심 단백질을 활용하여 내열성 작물 개발 연구를 지속적으로 추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번 연구는 한국연구재단 및 식물생체리듬연구센터(SRC, 단장 김외연 교수)의 연구비 지원으로 진행됐다. 논문 제목은 ‘열 충격에 의한 아연 방출이 애기장대 E3 리가아제 EMR을 분자 샤페론으로 전환시킴(Heat shock-induced zinc efflux repurposes Arabidopsis E3 ligase EMR as a molecular chaperone)’이다.

특히 이 연구결과는 순수하게 경상국립대학교에서 이뤄낸 ‘토종 국내 연구성과’로서 경상국립대학교 연구자들의 연구역량이 세계 최고 수준임을 다시 한번 입증한 사례이다.

◐ 연구팀 소개

논문을 지도한 이상열 교수는 “연구를 주도한 채호병 박사와 배수빈 박사는 어려운 연구 질문에 끊임없이 도전하는 열정과 탁월한 실험 역량을 보여주었다.”라며 “두 연구자의 긴밀한 협력과 창의적 사고가 있었기에 이와 같은 세계적 수준의 성과를 이룰 수 있었다.”라고 밝혔다.

이상열 교수팀은 기후변화에 따른 환경 스트레스와 식물 스트레스 저항성 메커니즘을 집중적으로 연구하고 있으며, 2004년 《셀(Cell)》지 논문 발표를 필두로 《사이언스(Science)》, 《몰레큘러 플랜트(Molecular Plant)》, 《네이처 플랜트(Nature Plants)》, 《네이처 커뮤니케이션(Nature Communication)》, 《미국 왕립학회지(PNAS)》 등 세계적 학술지에 다수의 논문을 발표해 왔다.

이상열 교수는 한국과학기술한림원 정회원으로서 경상국립대학교 ‘시스템합성 농생명공학사업단’ 단장(2011~2020년)과 한국분자세포생물학회 학회장(2015년)을 역임했으며, 현재 경상국립대학교 석좌교수로서 활발한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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