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령포의 달빛’, ‘어머니 품 같은 홍천’ … 강원의 숨결, 동시대 미술의 '시원'이 되다

조성환 기자 / 기사승인 : 2026-05-06 08:0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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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전상국 참여, 강원 인문학의 정점과 시각예술의 만남
▲ 〈상생도Ⅱ〉 2001. 캔버스에 유채.

[파이낸셜경제=조성환 기자] 대한민국 동시대 미술을 상징하는 거장들이 각자의 예술적 시원(始原)인 강원을 사유하며, 삶의 궤적과 창작의 근원을 조명하는 기획전이 열린다.

강원문화재단은 오는 5월 28일부터 6월 18일까지 춘천문화예술회관에서 기획전 '시원(始原)의 숨결을 따라 : 20인의 강원 이야기'를 개최한다.

이번 전시는 강원의 대지에서 첫 숨을 틔운 20인의 시각예술가들이 각자의 예술 세계를 구축한 뒤, 다시금 자신들의 ‘영혼의 탯줄’인 강원을 사유하며 내놓은 기록의 산물이다.

거장들의 예술적 원형, 강원의 기억에서 길어 올리다

이번 전시는 ‘향수(鄕愁)’를 단순한 감정적 회고를 넘어 인간 존재의 근원을 향한 갈망으로 정의한다.

강원이라는 공간은 작가들에게 단순한 지명이 아니라, 세계와 관계 맺는 방식이 형성된 원점이자 예술적 생명을 공급받는 탯줄과도 같은 곳이다.

60년 화업의 전광영 작가는 "어머니 품 같았던 홍천”에서의 어린 시절 기억과 한약방의 경험을 한국 특유의 ‘정(情)’ 문화와 결합했다. 보자기 정서를 접목한 그의 독보적인 한지 작업은 전 세계가 주목하는 한국적 현대미술의 정수를 보여준다.

목탄 화가 이재삼 작가는 영월 청령포에서 마주한 물안개와 달빛의 기억을 오직 목탄만으로 구현한다. 빛과 어둠의 경계를 넘나드는 그의 작업은 강원의 서정성이 어떻게 보편적 미학으로 승화되는지 증명한다.

소마미술관 명예관장을 역임한 김태호 작가는 원주 치악산 자락의 적막한 기억과 매몰된 유년의 서사를 현재로 소환하여 과거와 미래를 연결한다.

수백 번 덧칠하고 덮어내는 수행적 과정을 통해 시공을 초월한 살아있는 시간과 조우한다.

춘천의 전란과 서울의 격동을 관통한 뒤 다시 본향으로 돌아온 황효창 작가는, 현실의 아픔을 투영한 ‘인형’이라는 매개체로 시대의 실존적 초상을 그려낸다.

그는 현실과 이상이 교차하는 '상생도'와 '아무 데도 없는 나라'를 통해 시대의 아픔을 승화시킨 독자적인 회화 세계를 구축한다.

석주미술상을 수상한 안재홍 작가는 양구의 혹독한 추위를 견뎌낸 ‘겨울나무’와 인체 형상을 결합하여 ‘강원도의 힘’과 생명력을 형상화 한다.

전쟁 직후 강릉 옥계에서 출생하여 시대가 남긴 흉터와 아픔을 목격하며 성장한 김진열 작가는 버려진 철판이나 투박한 종이 위에 거칠게 부식된 ‘녹빛'으로 소외된 이웃의 모습을 담아, 비루한 현실 속에서도 꺾이지 않는 인간의 숭고한 존엄을 증명한다.

소설가 전상국, “강원의 자연은 예술혼의 항심(恒心)으로 피어난다”

특히 이번 전시는 대한민국예술원 회원이자 소설가인 전상국 작가의 서문 '강원의 오늘, 아침 무지개로 피어나다'를 통해 그 인문학적 깊이를 완성했다.

전 작가는 이번 전시를 강원의 척박한 숙명을 예술적 저력으로 승화시켜온 작가들의 집단적 서사이자, 인간 존엄의 정수를 회복하는 엄숙한 선언으로 정의했다.

"아티스트들의 고향은 그네들이 찾고자 하는 미적 영감의 발원이며 그 미적 가치의 현재성, 그 완성이며 더 빛나는 미래상이다. 그네들 유년의 몸과 마음이 기억하고 있는 고향의 그 흙과 바람의 전령들이 어느 날 술렁이며 일어설 때 아티스트들은 비로소 크레이티브, 그 신명의 날개를 펼쳤으리라.” (서문 '강원의 오늘, 아침 무지개로 피어나다'중)

2025년의 대면 채록, 2026년 ‘살아있는 아카이브’로 부활

전시를 기획한 신지희 강원문화재단 전문위원은 지난 2025년 한 해 동안 20인의 작가를 직접 대면하며 그들의 생생한 목소리를 채록했다. 신 위원은 “거대 담론이 사라진 시대에 작가 개인의 삶에서 길어 올린 ‘살아있는 이야기'는 그 무엇보다 강력한 보편성을 지닌다”라며, “20인의 서로 다른 숨결이 빚어낸 이 기록이, 지역의 경계를 넘어 인간 존재의 본향을 직시하는 소중한 예술적 자산이 되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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